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구애와 마찬가지로 떠나는 일도 과묵이라는 담요 밑에서 고통을 겪는다. 의사소통 체계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논의하기조차 힘들다. 그것은 양쪽 모두 그것을 복원하고 싶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연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정직한 대화는 짜증만 일으키고, 그것을 소생시키려다 사랑만 질식시킬 뿐이다. 연인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짝에게 다시 구애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그 결과 낭만적 테러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대책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응답을 강요하려고 여러가지 꾀(삐치기, 질투, 죄책감 자극)를 부리기도 하고, 그 앞에서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울음을 터뜨리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등). 테러리스트가 된 연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연애에서나 정치에서나) 어떤 일이 쓸모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안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꼭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도 있는 법이다.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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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in love. 사랑이라는 주제와 끊임없이 재잘대는듯한 텍스트를 보다보면 수다스러운 프랑스여자가 쓰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 교육받은 남자의 생각과 시각이라고. 그렇구나. 난 문화적 편견을 갖고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