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살며 생각하며

조기졸업자와 현역, 그리고 재수

대학에 왔더니 조기졸업자 전형이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대학에 가는 나이인 20살보다 한 살 어린. 19살의 10대 대학생이 많더라. 주요 과목들을 이수해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조기졸업한 친구들.

 

같은 학번끼리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는 게 맞겠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년 차이를 크게 느꼈던지라 여전히 1년의 차이를 조금은 의식한다. '얘가 나보다 어린데. 고등학교 1년 덜 다녔는데.', '생각이 어리구만, 세상을 덜 겪었구만' 하는 우스운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조기졸업자인 친구가 나에게 "야!"라고 부를 때 움찔, 한 적도 있다.

 

어제 다시 이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특히 분반 안에서는 바로 윗 학번의 조기졸업한 선배를 만날 일이 자주 없었고, 그래서 친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불편했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나와 나이가 같거나 생일이 늦은 선배도 있긴 했다. 그렇지만 딱히 불편할 건 없었다. 오빠나 언니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뒤 '아, 나보다 어린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잠시뿐.

 

대개는 나이에 민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다.
나이가 같거나 혹은 더 어린 선배가 '고작 1년 더 대학에 빨리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 행세를 하려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친구는 기분이 나빠져서 상대하기 싫다고 하더라. 나도 고등학교 때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교지편집부 활동을 했었는데, 별것도 아닌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1년 먼저 들어온 선배라고 이것저것 명령하는 걸 들으면서 '너 재수, 삼수 해라. 나중에는 내가 선배할래.'라고 속으로 꽁하게 주문을 외웠다

 

지금까지는 조기와 현역만 얘기했는데, 여기에 재수 이상의 사람들까지 겹치면 나이와 학번이 뒤섞여 참 난감하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걸까.

학번이 높은 경우에는 자기와 나이가 같거나 많은 후배에게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면 되는 거고, 학번이 낮은경우 자기와 나이가 같거나 어린 선배에게 먼저 편하게 말을 걸면서 불편한 상황을 해소하려 노력을 해야하지 않나. 보통은 그렇지 않더라. 학번이 높으면 자기가 선배라는 인식이 앞서 나이 많은 후배여도 막 대하기 쉽고, 그런 후배는 어린 선배 대하기 짜증나는거다. 결국 자기만 생각하더라. 사회생활 미리 경험한다 치고 좋게 해결해야 할 문제. 서로 높여주고 좋게 보는 게 맞는거다. 뭐, 다 알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거겠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니까.

 

어제 이런 주제로 이야기 나눴는데 결론은 없었다. 여기 주절거린 것도 내 생각일뿐, 각자 자기 가치관대로 하는거니까. 어제도 견해가 서로 달라서 계속 자기 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자칫하면 싸우지 않았을까. 나도 그다지 곱게 얘기하지 않아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는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네.

 

가끔은 이런 얘기를 후배들한테 꺼내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막상 얘기하려니 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뭐라고 이런 얘기를 나이 차이도 안 나는 후배들한테 한단 말인가. 나이가 좀 많아서 연륜이 묻어 나오는 수려한 화법으로 얘기 꺼내면 모를까, 지금은 살짝 쫄았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마음은 먹었지만 정말 할 수 있을지는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