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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이것저것

[중앙일보] 커피믹스와 스타벅스-하지현 교수

[삶의 향기] 커피믹스와 스타벅스

다른 사람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차 한잔 마실 일이 있으면 흔히 이런 질문을 듣는다. “커피믹스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 이때 “저 다방커피 좋아해요”라고 대답하면 순간 주인의 경계심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거리감이 많이 좁혀진 것을 느낀다. 만일 “저 원두커피만 마셔요. 설탕은 빼고요”라고 말했다면? 겉으로는 미안해하겠지만 아마 속으로는 ‘되게 까다롭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나 집주인 모두 커피전문점에 가면 카푸치노 더블샷같이 자기 취향에 맞춰 주문을 하고, 포인트 적립까지 한다. 또 평소 혼자 있을 때에는 커피믹스를 안 마실지 모른다. 그런데도 서로 잘 모르고 거리감이 느껴질 때, 혹은 굳이 취향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때 커피믹스는 편한 공통분모로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준다. 가격이 싼데도 커피믹스는 대형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단일품목 중 하나일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음수기 옆에 수북이 꽂혀 있는 커피믹스를 보면 인심이 푸짐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은 적당히 달고, 푸근하며 두세 모금 안에 끝을 낼 수 있는 커피믹스의 이 무난함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할 만한 최적의 공통분모로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이미 알고 있는 오차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 시켰다가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행착오의 수업료다. 게다가 여럿이 시킬 때에는 내 취향이 드러나게 되고, 이를 통해 나의 수준이 평가받는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카페모카에 크림까지 얹어서 먹는 걸 보니 커피는 오직 단맛으로만 먹는 인간이군. 몇 칼로리인지 알고 먹나? 자기관리가 안 되는군.’

이에 비해 커피믹스와 함께하는 공간은 취향의 노출과 평가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니 편하고 쉽게 동질감을 공유하며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나와 너라는 개인에서 ‘우리’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혼자 즐길 때에는 최대한 자기 취향을 살린다. 카페라테를 저지방 우유로 만들어 달라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커피 하나를 놓고도 현대인의 삶은 개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과 집단적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 안에 있다. 매일매일의 선택은 혼자냐 여럿이냐, 가까운 사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대립의 표면에 커피가 있다. 조금만 유심히 돋보기를 들이대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상의 이미지들이 사실은 심층심리의 무의식적 갈등과 타협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현대사회에서 커피믹스와 커피전문점은 상호대체재로 경쟁관계에 있다기보다 보완관계에 있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성숙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 지향이 바로 개성화인 것이다”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개성화와 개인주의는 다르다. 개성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개성화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과 수고도 크다. 튀는 사람,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겉으로는 존중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이상하게 보고 거리를 두려는 우리 문화의 특성은 개성화의 노력이 상처받고 움츠러들게 되기 쉽다. 이럴 때 덧난 상처가 아물도록 발라주는 반창고의 역할을 달달한 커피믹스 한잔이 해준다. 이 싸구려 커피 한잔으로 한 숨 돌리고 나면 다시 나를 찾아갈 힘이 생기니 말이다.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

나는 일상 생활에서 타협을 지향하고 웬만하면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렇지가 못하다. 직설적인 화법이라든가 나의 확고한 가치관이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듯하다. 이 외에도 여러 조건들이 그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 항상 겸손하려 노력하며 웬만하면 말하기보다 듣기를 열심히 하고자 한다. 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