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살며 생각하며

편지

간만에 편지함을 정리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편지를 모아왔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예뻐서 모으기 시작했고, 그러다 편지 쓰는 데에 재미붙여서 친구들이랑 교환하고 그것들을 모았다. 유행은 금방 지나갔고 결국에는 카드 위주로 모으게 됐는데 가끔씩 찾아보면 내 교우관계도 알 수 있고 그 때의 관심사나 연애사를 알 수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는 기숙사에 살다보니 예전 편지함에 편지를 모으지 못했다. 그러다 휴학계를 내고 집에 짐을 모두 싸와서 정리하다가 여러 편지를 발견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 주로 군인과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편지'들이 있었다. 한 장짜리 단발 내용에서부터 여러 장짜리 심각한 내용까지 감동적이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여러 가지 편지가 있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이지만, '글'이라는 것은 쓸 때 참 진지해지기도 하여 다음날 보면 취소하고 싶은 내용들로 빼곡하게 적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연애 편지는 참 그렇다. 감정을 실을수록 그렇다. 내가 받은 편지들 중에도 그런 게 있는데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참 고맙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내가 보냈을 것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참 뜻깊은 추억들이다.

초등학교 때 삐뚤삐뚤한 글씨로 친한 친구 운운하며 비싸고 화려하고 좋아보이는 카드 골라 쓴 것들이나, 머리 좀 굵어졌다고 심플하고 폼 나는 카드에 이쁜 척 하는 글씨로 쓴 카드들이나, 풋풋한 사랑 담아서 정성스레 쓴 연애 편지나, 군대와 사회는 다르네 어쩌네 하면서 종종 연락 주고 받던 편지들이나.. 다 고마운 추억들이다.

항상 생각나진 않겠지만, 가끔 이렇게 편지들을 보면 그 때 생각이- 그 때 감정이 되살아나곤 한다. 지금 가장 기억 나는 건 작년 내 생일에 예슬 언니와 티격태격 한 후 받은 생일축하카드.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동적이고 언니를 다시 보게 되는 행복한 추억.

오늘도 편지를 쓴다. 다른 사람에게 내 편지가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