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 2008. 4. 29. 17:57

졸업을 코앞에 둔 대학생으로서의 고민. 진로. 누군가는 항상 품어오던 꿈과 소망에 따라 쉽게 선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수많은 생각과 염려를 안고 이전에 없이 혼란스러워 하며 꿈부터 찾기 시작한다. 나는 그 중간의 모습이다.

1년 여 전, 휴학을 결심했다. 사유서에도 적었던 것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서' 휴학을 하기로 맘먹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 느끼는 것처럼 꿈을 갖는 것-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지 못한 채 휴학을 하였고, 원래 의도처럼 '이것저것' 해보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다양한 경험들이 나의 인생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찾아보자는 적극적인 태도로 그 시간을 보냈더라면 좀 더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꿈을 꾸다


나의 꿈. 어렸을 적 많이 질문 받던 '나의 꿈'
"너는 꿈이 무어니?"
"네.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의 꿈은 곧 미래의 직업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꿈을 직업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꿈이 직업이라면 나의 꿈은 아직 불완전하다. 지금 말할 수 있는 나의 꿈은, 사실 꿈이 뭔지 모르겠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면, '내가 가진 능력을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막연하다. 보다 가치 있는 일이 무얼까.

나는 경제논리(시장주의)에 휘말려 약자가 되어버린, 그러한 약자의 입장을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하고 싶다. 현대는 사랑과 정직 등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손해보는 세상이란다.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공의 기준은 돈이다. 난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의 흐름에 발을 담그고 내가 가진 것을 십분 활용해서 즐겁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면 내 삶이 참 공허해질 것 같았다.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시한 채 불편한 마음을 한쪽으로 치우고 스스로에게 행복을 세뇌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난 아버지를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아버지를 따랐고,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짐작해본다. 나는 아버지의 성품과 가치관을 참 좋아한다. 자신이 좀 손해보는 듯, 부족한 듯 살아도 당신이 더 행복하다는 확신이 나는 참 좋다. 어렸을 때는 그러한 아버지의 따뜻한 인상이 좋아서 따랐던 것 같고, 자라면서는 아버지가 옳다고 생각하여 더욱 좋아한 것 같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아버지로부터 나는 나의 철학을 조금더 발전시킨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만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헛되지 않게 쓰고 싶다. 그래서 찾아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기왕이면 보다 보람있는 일에 쓰고 싶은데...' 많이들 아는 것처럼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있다. NGO에서 일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많다. 정부에서 일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첫째는 언어, 다음으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언어가 일을 하는 데 필수조건인 건 두말 할 것 없고 다음은 전문가, 즉 쓰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쓰일 수 있게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목표를 세움


쓰임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참 두루뭉술한 목표다. 그래서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은 복학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이고, 학교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실행에 옮기자고 마음 먹었다. 가장 먼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긴장시키기로 했다. 작년 겨울 수강신청을 할 때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시간표를 짰으며 학교에 와서는 운동 프로그램과 요가도 시작했다. 수업도 운동도 빠지지 않으려 했으나 최근에 시험 기간이 겹치면서 운동을 몇 번 빠지며 해이해졌다. 다음으로 성적을 올려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대학생활을 잘 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성적도 웬만큼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 열심히 하였다.

이렇게 학기 중의 목표를 세웠다. 열심히 했기에 단기적인 성과를 얻었다면 참 만족스러울텐데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수동적으로 하루하루를 꾸려나갔을 때에는 괘념치 않던 내 부족함이 하나 둘 걸림돌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참 많아보이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 지도 잘 모르겠다. 참 속상하다. 미래에 가까워져 갈수록 느끼는 압박감이 점점 더 커진다. 노력해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중간점검. 면담


내가 제 방향으로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듣고 싶어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어제 두 분, 오늘 한 분 총 세 분을 만나뵈었다. 종합해보자면, 우리학교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서울이나 외국으로 가는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배우는 데에 더 유리할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한 분은 되도록 멀리, 새로운 환경에 가서 부딪치며 성장하라고 하셨다. 나는 기껏해야 같은 과 서울대 진학 정도로만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혔었는데 경영대학원이나 정치, 법, 외국 대학까지 언급하시더라. 선택의 폭은 정말 다양하구나. 같은 목적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일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진로가 오히려 막연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질문해보라는 말씀도 들었다.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인지에 대한 확신 없이 순간의 동요나 환상으로 진로를 정하려 고민해보았자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진정 원하면 길이 보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이쯤 나의 목표를 다시 점검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면담하고 내려오는 길에 아버지와 통화했다. 괜히 진지해져버려 눈물이 났다. 내가 참 못나 보이고 답답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내가 괜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나 싶기도 했다. 생각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적었고, 내 나름의 고민을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만으로 끝나버릴 꿈이라면서 말만 하지 말고 뭔가 행동을 하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고, 가식적인 태도인 양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누가 진로에 대해 물으면 에둘러 대답하곤 했다. 사실 교수님이 지적했던 것처럼 남들은 이 꿈이 한낱 몽상에 불과한, 그래서 1년도 채 가지 못할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진득히 준비한 후에, 다른 사람도 수긍할 만큼 내가 발전한 뒤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아버지랑 오랜만에 진지한 얘기를 했더니 무언가 서러워졌다.

앞으로는...

실컷 놀다가 학교에 온 지 두 달이 되었다. 이쯤 지치는 기분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힌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정리해야겠다. 부족한 걸 찾아 더욱 노력해야겠지만 최근에 잡생각이 많아져 집중이 잘 안 된다. 여유를 찾아야겠다. 책도 좀 읽고 웃어야겠다. 너무 진지해지면 쉽게 지치는 것 같다. 조급해하지 말고 긴장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