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기억

in Turkey

sora. 2007. 10. 30. 16:31

2007년 8월 28일 인천공항에서 출국. 같은 날 밤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대한항공 직행으로 11시간 걸린다). 첫날 이스탄불의 인상은, 예상과 같이 사람들이 말이 많고 정신 없으며 이러다 바가지 쓰고 여행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출국 일정을 캠프와 비슷하게 맞춰서 여행을 캠프 이후로 미뤘다. 그래야 능숙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획에 따라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차낙칼레로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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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은,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숙소를 나와 트램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장소 중 하나다. 아야소피아와 술탄아흐멧 사잇길... 캐리어를 끌고 가기 가장 어려웠던 추억의 장소다. 관광명소답게 아름답게 꾸미자는 차원에서 바닥을 벽돌로 깐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여행하기에는 오히려 힘들었다. 술탄아흐멧 구역도 그렇고, 사프란볼루(다른 도시)도 그랬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울툴붕퉁한 길에서 캐리어 끌다가 망가져서 고생하는 사람 여럿 봤다. 내 캐리어 바퀴도 살짝 이상해졌고.

다음은 버스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순간. 버스가 패리에 실려 바다를 건넌다. 보이는 곳이 첫번째 목적지였던 차낙칼레. 가는 동안에 버스 승무원(터키의 장거리 버스는 승무원이 있고 운전기사도 여러 명이다. 열 시간, 스무 시간씩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번갈아가면서 운전하고, 중간에 음료와 빵도 제공한다)과 캐나다 사는 아저씨랑 친해져서 같이 차 마시고 놀았다.

도착했을 때(29일 오후)는 이미 투어가 끝난 시점이었는데 그래도 굳이 트로이 목마를 보겠다고 혼자 가는 위험을 감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돌무쉬도 처음 타보는 거였고, 터키어도 그 때는 하나도 몰랐는데 무작정 먼 거리를 이동했다. 다행히 돌아올 때 트로이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도와주셔서 차를 얻어타고 왔는데, 하마터면 버스 놓치고 미아 될뻔 했다. 여행객이 별로 없어서 셀카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기록ㅋ

30일에 차낙칼레를 마저 구경하고 이즈미르(원래 워크캠프 장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 차 렉스톤을 봐서 반가워 찍은 사진. 밤에 도착해서 위험했기에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숙박했는데 가격도 비싸고 너무 안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미팅 장소에 갔으나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어이 없는 소식!!! 한국 지사에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이다. 바뀐 장소까지 이동하는 데에 24시간이 넘게 걸린 듯하다. (차낙칼레-이즈미르(우를라)-안탈랴-악세키-이브라드) 다른 한국 친구는 힘들어서 그랬는지 오자마자 뻗어서 며칠 누워있었는데, 나는 이동 과정에 재밌는 일도 많았고 이브라드(바뀐 캠프장소)에 도착하기 직전 잠깐 구경한 악세키라는 시골 동네도 참 맘에 들었다. (마지막 사진)

힘들게 힘들게 도착한 곳에서 개최된 워크캠프는.. 사실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갑자기 바뀐 거라 준비된 것도 거의 없었고 초반에는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결국 2주 내내 한 일은 다 합해서 10시간도 안 됐고, 하루하루 힘들게 음식을 해먹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소가 바뀌면서 캠프 내용 자체가 달라졌는데- 음식을 손수 해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18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는 키친팀이 가장 고생스러웠다. 여튼 워크캠프를 하면서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고 잘 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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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니 논 것밖에 없네 ㅋ 캠프는 총 18명이었는데, 프랑스인 4명, 이탈리안 한 명, 세르비안 2명, 모로코 2명, 우크라이나 2명, 독일 한 명, 한국 2명, 일본 2명, 터키 2명이었다. 중간에 터키인 친구들이 놀러와서 같이 논 적도 있고- 이곳저곳 놀러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할 일도 없었고 장소도 해변에서 깊고 깊은 산 중으로 바뀌어서 애들이 전부 싫증내고 있었다. 캠프 마지막날까지 남아있던 사람이 반 정도밖에 안 된다. 많은 친구들이 캠프를 완료하지 않고 떠났다. 힘든 여건에서 기운을 잃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버티는 게 남아있던 멤버들의 목표였다. 다른 워크캠프와는 좀 달랐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목표가 없이 우왕좌왕 할 때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하는지...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캠프가 끝난 후(9월 14일) 본격적으로 터키 여행 시작. 초반에는 주로 유명한 여행지만 찾아가서 지루한 줄 모르고 미친 듯 놀았다. 그러다 중간에 터키에 질려서 그리스로 넘어갈까 하다가, 동부를 포기 못하고 넴룻 산에 발을 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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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페티예에 가서 페러글라이딩을 했다. 그리고 나서 연지(워크캠프 같이 했던 다른 한국인)를 만나서 보트투어 고고싱. 터키 여행은 크게 서부와 동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럭셔리하고 '관광'스러웠던 서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바로 페티예. 그 중에서도 보트 투어다. 저녁에는 페티예 시내(라고 해봐야 아주 조그맣지만 예쁘다)에 있는 MANGO BAR에 가서 놀았는데- 거기 일하는 애들이랑 친해져서 엄청 잘 놀았다. 게다가 데니스는 연지를 특별히 아껴줬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면서 잘 지낸다고 한다. 난 먼저 떠났는데,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거기 일하는 애들이 나를 보고싶어한다는 후문이.... ㅎㅎㅎ 영상편지도 남겼다길래 봤는데 너무 재밌다.

페티예 이후에 셀축 에페스, 파묵칼레, 카파도키아를 거쳐 넴룻산까지.... 그 기간이 추석 즈음이여서 한국 분들이 꽤 많았고 대부분 직장인이어서 졸래졸래 잘 따라다녔다. 터키 여행 중 가장 맘 편하게 다녔던 시기가 이 때이다. 여학생 혼자 여행하는 걸 대견해라 하시는 분도 많았고, 내가 현지인들하고 수다 떨면서 폴랑폴랑 다니는 걸 신기해라 하는 분도 계셨다. 어쨌든 별 사고 없이 걱정 없이 유명하다는 여행지를 즐겁게 보러 다녔다. 자세히 적기에는 좀 식상한 코스인 데다가 사진 찾기도 귀찮아서 이쪽은 넘어간다:)

10번째 사진이 동부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인데, 카파도키아(위치상 터키의 중심부에 있고 여기서 동부로 더 가는 여행자들은 얼마 안 된다)에서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Malatya에 도착했다. 넴룻산으로 투어가는 기점이 되는 곳인데, 거기에서 그 투어를 주관하는 케말 할배와 찍은 사진이다. 10시간 버스타고 새벽에 내려서 시청 문 열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다.
넴룻이 정말 좋았다. 특히 해 뜰때... 우리가 간 날은 날씨도 안 추웠고(이건 행운이다) 뭔가 여행 중반에 들어- 마음이 정리되고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덜컹거리는 승합차를 타고 몇 시간을 올라 도착한 별장에는 요리사와 관리인과 가이드가 살고 있는데, 등산이 가능한 따뜻한 기간 동안만 그 곳에서 산다고 한다. 함께 맛있는(정말 맛있는) 저녁을 먹고, 석양을 구경하고 잠시 쉬다가 별도 구경하고(사실 보름달이 떠서 별은 잘 안 보였다) 다음날 일출을 보는데.. 아~~~ 그 때 기분은... 솔직히 잘 안 떠오르네ㅠㅠ

넴룻을 거쳐 동부에 가니 어느덧 9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곳저곳 들러 그 유명한 하산케이프에 도착. 가는 길에 마르딘에 갔었는데, 출국할 때 들어보니 그 곳에서 이라크인들이 테러를 일으켰다고 하더라. 내가 뜨고 얼마 안 지나 발생한 일 같던데, 큰일날 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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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케이프에서는 모텔을 운영하는 가족들과 친해져서 (자그마치 9남매이다. 첫째가 26살, 막내가 7살) 낮에는 집에서 여자애들이랑 놀거나 낮잠 자고 저녁에는 강가(티그리스 강이 얘네 동네 놀이터다)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물장구도 치며 놀았다. 밥도 얻어먹으면서 며칠 쉬다가 떠나는데, 어찌 그리 아쉽던지... 마치 옛날 우리네 시골의 정을 느끼면서 아쉽게 인사를 했다. 2번 사진이 하산케이프 전경(오래 된 아름다운 다리의 흔적이나 동굴집 등)을 담은 건데, 정부에서 아래쪽에 댐을 짓기로 해서 몇 년이 지나면 수몰될 거라고 한다. 워낙 유적이 넘치는 터키라서, 하산케이프 정도의 유적은 날려버려도 된다고 판단했나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인정해야지 뭐..

하산케이프를 떠나 Van 호수의 악다마르 섬을 구경하면서 며칠 머물렀다. 5번 사진은 정말 그림같은데, 반에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온 게 오히려 수채화같은 느낌이 난다. 굿:) 그렇게 Van에 가서 섬도 구경하고, odd eye로 유명한 반 고양이도 보고 놀다가 도우베야짓으로 갔다. 반에서는 안 좋은 일이 좀 있었는데- 다행히 코스가 계속 겹쳤던 일본인과 영어를 잘하는 터키인 친구가 도와줘서 잘 해결됐다.

10번 사진이 도우베야짓에 있는 이삭 파샤 궁전이다. 색도 그렇고 특이하다. 그렇게 도우베야짓을 하루 구경하고 트라브존으로 떠났다. 카파도키아에서 동부로 넘어가면서부터 이동시간이 점점 길어졌는데, 아마 터키 여행 동안 탄 버스 시간을 합하면 150시간이 넘을 거다. 트라브존에서는 흑해 연안을 거닐면서 아야소피아(사진11)까지 걸어갔던 게 참 기억에 남는다. 절벽에 세운 수멜라 수도원(사진12)도 참 특이했다. 그 때 등산한 산은 그 전까지 여행하면서 본 대부분의 산들이 벌거벗고 먼지 날리던 것에 비해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있어, 마치 한국 땅을 밟은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등산하면서 어떤 아주머니와 얘기하게 됐는데, 이스탄불에 있는 마르마라 대학이었나, 거기를 수석졸업한 유일한 여학생 출신에 교수직을 지내고, 현재는 dental clinic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아들은 헐리웃에서 영화공부 한다던가... 오- 대단해요-_-)b 명함도 받았는데, 사실 연락할 일이 없다;

동부 여행할 즈음 라마단(금식 기간)이어서 고생했는데, 이게 끝나는 동시에 우리네 추석과 같은 명절이 시작한다. 그 때 민족 대이동(?)이 예상 되어서 표가 없을지 몰라 서둘러 이스탄불로 들어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그래서 트라브존도 잠깐만 구경하고 사프란볼루로 넘어갔다. 한 마을이 통째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사진13). 독특한 외관의 전통 가옥으로만 이뤄진 마을이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거쳐 이스탄불로 컴백. 거기서 만난 언니들이 내가 너무 포동포동하고 멀쩡해서 이제 막 터키에 온 줄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사실 잠도 못 자고 며칠 이동한 적도 있고 밥도 잘 못 먹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심적으로 편하게 여행해서인지 내가 지쳐보이지 않았나보다.

이미 터키의 많은 지역을 여행하고 온 내게 이스탄불은 너무 상업적이고 사람 정이 안 느껴진다고 생각됐다. 도착해서 잠깐 있으면서 출장 오신 한국인 아저씨께 밥도 얻어먹고(두 번째 사진은 내가 대접한 감자 샐러드같은 거다. 이름이 생각 안 나네) 유명한 고등어케밥(사진1)도 먹어보고... 그러다 시간도 있으니 불가리아나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4번째부터 7번째 사진은 불가리아 소피아다. 사실 사진 찍은 건 더 많은데, 올리려니 귀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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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는 러시아 느낌이 좀 난다. 교회도 러시아풍이고, 석상도 많으며 도시 전체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동생에게 줄 선물도 사고, 레스토랑(사진4)에서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가격에 그럴싸한 저녁도 먹었다. 불가리아, 하면 생각나는 게 요거트여서, 요거트도 주문해서 먹어봤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건 도마슈노 플레인 요거트. 터키에서도 아이란이라는 요거트같은 음료가 있어서 많이 먹었는데- 지금도 이런 요거트 종류를 많이 먹는다. 참 맛있어요:)

불가리아를 다녀와서 이스탄불의 주요 먹거리(?)를 살짝 먹어주고, 가장 화려하다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구경한 다음(사진8. 사실 불가리아에 가기 전에 걸어서 대충 돌아다니긴 했었다) 출국. 마지막 사진이 공항 안의 shop에서 찍은 사진인데 뒤에 보이는 게 물담배다. 기념품으로 사올까 싶었지만 너무 크기도 하고, 쓸 일도 없어보여 사진만 찍었다. 터키 있는 동안에 몇 번 펴봤는데- 딸기맛이 좋다.

이스탄불에서 사람의 정이 안 느껴진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 한국인 아저씨 만나서 맛있는 식사도 대접받고, 묵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 도와주고 밥 얻어먹고... 이스탄불 아웃하기 전날에는 동네 축구하는 애들 만나서 응원하면서 친해지고... 그래도 나름 인연을 많이 만들었다. 다시 가도 생각날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16일 아웃. 17일에 한국에 도착해서도 이곳저곳 쏘다니면서 휴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몇 개월 안 남았는데 알차게 보내야지. 즐겁게.




연지가 다시 페티예에 갔을 때 오즈귤이 동영상을 남겼다. 아직 영어를 안 배워서 대화 잘 못했었는데 그래도 굳이 영상편지를 남겨서 연지 편으로 내게 전달했다. 망고 바의 오즈귤도, 데니스도.. 반에서도 도와주고 우연찮게 4번이나 만났던 사토시도... 같이 워크캠프 했던 사오리, 리사, 올리비아, 체짜 등등... 전부 다 보고싶다. 엉엉-



근데 오즈귤 웃기다. ㅋㅋㅋ